이무연 교수 (동아대학교 기계공학과)

“엔진오일 시장이 축소되면 윤활유 산업 전체도 타격을 받지 않을까?” 전기차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질문입니다. 전기차에는 엔진이 없고, 따라서 엔진오일도 필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랫동안 엔진오일은 내연기관 차량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핵심 소모품이었고, 윤활유 산업의 중심축 역할을 해왔습니다. 이런 배경 때문에 산업 위축 우려가 제기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만합니다.
하지만 실제 시장 흐름은 예상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전기차 보급이 확대될수록 기존과는 성격이 다른 열관리 수요가 빠르게 증가하며, 냉각 기술 자체가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연기관 냉각 방식과 전기차의 구조적 차이
내연기관 시대의 냉각 기술은 비열이 높고 열전달 효율이 뛰어난 물(냉각수)을 사용하는 수냉식 방식이 표준이었습니다. 엔진 블록처럼 전기적 위험이 없는 금속 구조에서는 물이 가장 효율적인 냉각 매체로 작동했기 때문입니다.
반면, 전기차의 핵심 부품은 모터, 인버터, 배터리 등 고전압이 집중된 영역입니다. 이들 주변에서 물을 사용하는 것은 누설 시 단락·전기 손상·열폭주 같은 심각한 위험을 동반합니다. 때문에 전기차는 발열체와 직접 접촉하지 않는 ‘간접 냉각’ 구조를 채택하고 있는데요.
문제는 이 간접 냉각 방식이 전기차 환경에서 점점 더 뚜렷한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는 점입니다. 대표적인 문제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전기차 열관리에서 수냉식 방식이 직면한 구조적 문제

① 고전압 장치와의 적용성 문제
물은 기본적으로 전기전도도(Conductivity)를 가지므로, 고전압 회로 주변에서 냉각수가 누설되면 단락(Short), 전기적 손상, 시스템 셧다운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특히 배터리에서는 냉각수 누설이 열폭주의 직접적인 방아쇠가 되어 화재 위험을 크게 높이는데요.
여기에 배터리 셀 파우치, 절연재, 도전재(구리·알루미늄), 수지류 등 주요 고전압 부품이 모두 수분에 취약하다는 특성까지 겹치면서, 전기적 손상과 열폭주 위험은 더 크게 확대됩니다.
② 간접 수냉식의 냉각 성능 한계
전기차는 구성 부품마다 요구되는 최적 작동온도가 모두 다르기 때문에 열관리 기준이 매우 까다롭습니다. 하지만 간접 수냉식은 발열체와 냉각유체 사이에 하우징·냉각판 같은 열저항층이 존재해, 급격한 열 발생에 빠르게 대응하기 어렵습니다.
예컨대 구동모터는 온도 변화에 매우 민감해, 권선 온도가 약 10℃만 상승해도 절연 수명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는 곧 모터 효율 저하와 신뢰성 감소로 이어지게 됩니다.
배터리 역시 약 15~35℃(특히 20~30℃)라는 좁은 온도 범위에서만 최적 성능을 발휘합니다. 고온에 노출되면 열화가 가속되고 열폭주 위험이 커지며, 저온 상태에서는 출력 저하와 가용 용량 감소가 발생하는데요. 이러한 온도 민감성은 겨울철 전기차 주행거리가 짧아지는 주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결국 물 기반 냉각만으로는 전기차의 고도화된 열관리 기준을 충족하기 어렵고, 발열체와 직접 접촉하면서도 고전압 환경에서 안전한 냉각유가 필요해졌습니다. 이 과정에서 윤활유는 단순한 마찰 저감제를 넘어, 절연과 냉각 기능을 동시에 수행해야 하는 새로운 역할을 요구받고 있습니다.
내연기관 시대에는 유체의 역할이 명확히 분리되어 있었습니다. 엔진오일은 ‘윤활’, 냉각수는 ‘열제어’, 절연유는 ‘전자장치 보호’ 등과 같이 각자가 맡은 기능이 뚜렷했죠. 하지만 전기차 구동계에서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이제는 ‘윤활’, ‘절연’, ‘냉각’ 기능을 하나의 유체가 동시에 책임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전기차는 이전보다 훨씬 높은 안정성·내열성·절연 성능까지 요구합니다. 이로 인해 전통적인 냉각유와 윤활유의 기능적 구분이 빠르게 희미해지고 있고, 두 기능을 통합한 고기능 유체가 새로운 표준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즉 전기차 시대의 도래로 인해 엔진오일 사용량이 감소하더라도, 이를 윤활유 산업 전체의 축소로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오히려 새로운 역할로의 재편이 시작되는 시점이며, 차세대 열관리 기술에서 윤활유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열관리 경쟁력을 결정하는 윤활유 기술
전기차뿐 아니라 데이터센터, 반도체 공정 등 고출력 전자장비에서도 물 대신 절연 가능한 윤활유(냉각유)를 사용해야 하는 환경이 확대되면서, 냉각 기술의 기준도 달라지고 있습니다.
이제 냉각의 핵심은 단순히 ‘어떻게 식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유체로 식혀야 안전한가’, 즉 냉각과 절연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최적의 유체를 선택하는 방향으로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전기차의 구동모터, 인버터, 배터리처럼 발열이 큰 핵심 장치는 모두 고전압 시스템으로 구성되어 있어 물 기반 수냉식이 가진 누설·단락·부식과 같은 전기적 리스크를 근본적으로 피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전기차에서 사용되는 냉각유는 △절연 성능 △고전압 부품과의 화학적 안정성 △고온 장기 내구성 △열전달 성능을 모두 충족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복합적인 요구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기술이 바로 ‘액침냉각(Immersion Cooling)’입니다. 액침냉각의 주요 장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① 전기적 안전성 보장(절연)
액침냉각은 발열체를 전기전도도가 매우 낮은 절연유 속에 직접 담가 식히는 방식입니다. 유체 자체가 전기를 거의 통하지 않기 때문에, 고전압 부품을 다루는 전기차나 전자장비에서 전기적 누설·단락·부식 위험을 구조적으로 차단할 수 있습니다.
② 수냉식 한계 극복(직접 접촉 냉각)
기존 간접 수냉식은 하우징이나 냉각판을 반드시 통과해야 하므로 그 구조 자체가 하나의 열저항층이 됩니다. 때문에 열 전달 속도가 늦어지고, 급격한 열 상승 상황에서 대응 능력이 떨어진다는 한계가 있었죠.
반면 액침냉각은 냉각유가 발열체와 직접 접촉하기 때문에 열저항이 거의 없고, 열이 발생하는 즉시 제거됩니다. 즉, 온도 변화에 대한 반응 속도가 크게 향상되는 것이 핵심입니다.
그렇다면 기존에 개발된 ‘절연도 되고, 냉각도 잘되는’ 유체를 전기차에 그대로 적용하면 해결될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전력 변압기나 고압 스위치에 사용되던 절연유는 기본 목적이 전기 절연에 있었고, 냉각유체로서 필요한 점도·밀도·비열·열전도도 같은 핵심 물성은 충분히 고려되지 않은 경우가 많았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열유동 특성이 실제 냉각 성능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라는 점입니다. 따라서 절연만 뛰어난 유체를 전기차 액침냉각에 그대로 적용하면 전기적으로는 안전하더라도, 냉각 성능은 기존 간접 수냉식보다 떨어질 수 있습니다.
게다가 전기차는 훨씬 더 복잡한 조건을 요구합니다. 모터·인버터·배터리의 온도 특성에 맞춰 인화점은 충분히 높아야 하고, 혹한 환경을 고려해 유동점은 낮아야 하며, ODP·GWP 같은 환경 규제 지표, 독성, 생분해성, 금속·플라스틱과의 화학적 호환성까지 모두 충족해야 합니다.
즉, 기존 절연유가 전기 절연에 초점을 맞추고 설계되었다면, 전기차 액침냉각은 고전압 안전성, 빠른 열 제거, 장기 내구성을 동시에 만족해야 하는 복합 요구 조건을 갖고 있는 셈입니다.
다시 말해 액침냉각은 단순히 ‘물 대신 절연유로 바꾸는 기술’이 아니라, 윤활유 자체가 열관리 성능을 결정하는 핵심 기술로 격상된 단계입니다. 때문에 고전압 안정성, 고열 내구성, 소재 호환성, 환경성, 열전달 성능을 모두 만족하는 유체를 만들어내는 것이 새로운 경쟁력이 되고 있습니다.
신소재 경쟁, 실리콘·불소계 유체의 부상

액침냉각 시장이 빠르게 확대되면서 냉각유의 선택 기준도 과거와 크게 달라졌습니다. 기존 절연유의 대부분은 미네랄유 기반이었지만, 전기차·데이터센터·ESS에 요구되는 고전압·고열·안전성의 수준은 미네랄유로 대응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산업계는 단순 정제유가 아닌, 목적에 맞게 분자를 설계해 기능을 조절한 ‘신소재 냉각유’ 개발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열안정성·절연성·안전성·친환경성을 한층 강화한 유체들이 시장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으며, 그 핵심이 바로 실리콘계(Silicone-based)와 불소계(Fluorinated) 유체입니다.
① 실리콘계 유체
실리콘유는 고온과 저온에서 모두 안정적인 성능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큰 장점입니다. 온도가 변해도 점도 변화가 크지 않아, 계절별 외기 온도 차이가 큰 전기차 열관리 환경에서 특히 유리하게 작동하죠.
이러한 특성을 바탕으로 실리콘계 유체는 용도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발전해 왔습니다. 고온 안정성이 뛰어난 실록산(Siloxane)을 비롯해, 액침냉각 적용을 위해 점도를 낮춘 개질 실록산(Modified Siloxane), 그리고 실리콘과 불소의 장점을 결합해 내열성과 절연성을 높인 플루오로실록산(Fluorosiloxane) 등이 대표적인 종류입니다.
② 불소계 유체
불소계 유체는 C–F 결합(탄소–플루오린 결합)이 갖는 높은 결합 에너지와 낮은 반응성 덕분에 최근 빠르게 주목받고 있습니다. 불소가 탄소를 안정적으로 둘러싼 구조를 이루기 때문에 산소, 습기, 금속과 거의 반응하지 않으며, 고온 환경에서도 분해나 산화가 매우 적은 것이 특징이죠. 이런 특성 덕분에 장기간 사용해도 물성이 크게 변하지 않고, 전기장이 강한 환경에서도 절연 성능이 안정적으로 유지됩니다.
또한 다수의 불소계 유체는 불연성에 가까운 안전성을 보여 ESS나 데이터센터처럼 화재 위험 관리가 중요한 분야에서 빠르게 채택되고 있습니다. 장비 표면에 잔유나 부산물이 남지 않는 점도 정밀 전자장비 운용에서 큰 장점으로 평가됩니다.
대표적인 불소계 유체로는 완전 불소화 구조로 안정성이 뛰어난 PFPE(Perfluoropolyether: 퍼플루오로폴리에테르), 저점도·저휘발 특성을 갖춘 HFE(Hydrofluoroether: 하이드로플루오로에테르), 높은 불연성과 절연성을 제공하는 PFC(Perfluorocarbon: 퍼플루오로카본, 완전불소화탄화수소) 계열 등이 있습니다.
최근 실리콘·불소계 유체가 ‘신소재 냉각유’로 주목받는 이유는, 이들 유체가 분자 설계를 통해 냉각유의 특성을 목적에 맞게 조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점도·열전달·절연·내열·안전성 같은 핵심 물성을 설계 단계에서 정밀하게 맞출 수 있어, 기존 미네랄유로는 대응할 수 없던 고열·고전압·장기 내구성 요구를 구조적으로 해결할 수 있죠.
이러한 특성 덕분에 신소재 절연유는 최근 발열량이 급격히 증가한 GPU와 HBM(High Bandwidth Memory)의 열관리에도 높은 적합성을 보이고 있습니다. 더불어 자율주행·전기구동이 중심이 되는 차세대 모빌리티 산업은 물론, AI와 빅데이터가 주도하는 4차 산업혁명 환경에서 핵심 역할을 하는 전력변환장치, ESS, 데이터센터 같은 고출력 장비에서도 적용 범위를 빠르게 확대하며 주요 냉각유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전기차 시대, 윤활유 기업의 새로운 역할

윤활유 산업은 새로운 역할로의 재편과 도약의 국면에 서 있습니다. 냉각 기술의 변화는 곧 윤활 기술의 진화를 의미하며, 고기능 유체를 설계하는 역량은 전기차뿐 아니라 데이터센터, 전력변환장치, ESS 등 모든 ‘열을 다루는 산업’에서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기술이 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글로벌 시장조사 기관들의 전망에서도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액침냉각 시장은 빠른 성장이 예상되며, 기관별 분석에 따르면 2030년대 초중반에는 약 10억~100억 달러 규모로 확대될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인사이트 파트너스(Insight Partners)는 전기차 액침냉각 시장이 2023년 210만 달러에서 2031년 2억 7,845만 달러로 늘어나며, 100배 이상의 고성장이 예상됩니다.
주목해야 할 점은, 액침냉각에 사용되는 고성능 절연유가 단순히 등장한 신기술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윤활유 기업이 오랜 시간 축적해 온 핵심 역량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기술 분야지요.
고온 안정성, 합성기유 기반 설계, 첨가제 기술, 소재 내구성 평가 등은 엔진오일·산업용 윤활유 개발 과정에서 이미 체계적으로 발전해 온 기술이며, 이러한 기반은 전기차 액침냉각·절연 냉각유 시장으로 자연스럽게 확장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이 윤활유 기업에게 전기차 시대에도 소재 기업으로서의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는 분명한 기회가 되고 있습니다. 결국 전기차 시대의 경쟁력은 “얼마나 잘 식히느냐”가 아니라, “어떤 유체로 식히느냐”가 결정하게 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