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과학기술대 환경공학과 배재근 교수

과거 산업 현장에서 발생한 ‘폐유’는 지정폐기물로 관리되며, 주로 적정한 처리와 처분이 필요한 대상으로 인식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탄소중립과 자원순환이 산업계의 핵심 과제로 떠오른 오늘날, 폐유를 바라보는 관점 역시 ‘버려야 할 폐기물’에서 ‘다시 활용할 수 있는 자원’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원료를 채굴해 제품을 생산하고 사용한 뒤 폐기하는 기존의 ‘채굴-사용-폐기’ 중심 선형경제(Linear Economy)에서 벗어나, 사용이 끝난 자원을 다시 생산 과정으로 되돌리는 순환경제(Circular Economy)가 새로운 산업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산업 폐유를 재활용하는 것은 새로운 화석자원의 투입을 줄이고 폐기물 처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 부담을 낮출 수 있는 탄소중립 실천 방안 가운데 하나입니다.
특히 최근에는 폐유에서 단순히 이물질을 제거하는 수준을 넘어, 용제 추출(Solvent Extraction)이나 수소화 정제(Hydrotreating) 등 고도화된 정제 기술을 활용해 다시 산업 원료로 되돌리는 기술이 발전하고 있습니다. 폐유의 종류와 성상에 따라 불순물과 열화된 성분을 제거하고 활용 가능한 유분을 회수함으로써, 다시 윤활유와 석유화학 제품 등에 활용할 수 있는 기유를 생산하는 것입니다.
즉, 한 번 사용한 자원을 낮은 가치의 용도로 소비하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시 고부가가치 원료로 되돌려 자원의 사용 수명을 연장하는 ‘업사이클링(Upcycling)’입니다.
그렇다면 폐유는 현재 어떻게 재활용되고 있으며, 폐유를 다시 고품질 윤활기유로 되돌리는 순환경제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어떤 기술적·제도적 과제를 해결해야 할까요?
버려지는 폐유에서 새로운 산업 원료로, 폐유 재활용의 변화

폐유라고 해서 모두 같은 성질을 갖는 것은 아닙니다. 자동차와 산업설비에서 발생하는 폐엔진오일·폐기어유·폐유압유부터 제조공정에서 사용되는 폐절삭유와 폐열처리유, 폐식용유와 같은 동식물성 폐유, 산업 현장에서 발생하는 폐유기용제까지 종류가 매우 다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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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
세부 항목 |
성상 및 주요 오염물 |
주요 재활용 공정 및 최종 제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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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윤활유(엔진·기계유) |
폐엔진오일, 폐기어유, 폐유압유, 폐터빈유 |
산화 생성물, 금속 분진(Fe, Cu), 첨가제 잔여물, 미연소 연료 |
재생기유(Re-refined Base Oil), 정제연료유, 시멘트 소성로 Co-processi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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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윤활유(가공·특수유) |
수용성·비수용성 폐절삭유, 폐열처리유, 폐절연유 |
유화제, 미생물, PAHs, 사용 이력에 따른 PCBs 등 |
유수분리 후 감압증류, 화학적 처리 및 열회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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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식물성 폐유 |
폐식용유, 도축 부산물 유지, 식품공장 부산물 |
유리지방산(FFA), 수분, 음식물 잔재 |
바이오디젤(FAME), 지속가능항공유(SAF)·HVO 원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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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유기용제 및 슬러지 |
세척용제(TCE, IPA), 톨루엔·크실렌, 탱크 슬러지 |
휘발성유기화합물(VOCs), 고형물 및 중금속 함유 슬러지 |
증류 회수를 통한 용제 재사용, 고칼로리 소각·열회수 |
이 가운데 순환경제 관점에서 특히 주목할 수 있는 것이 폐윤활유를 다시 윤활기유로 되돌리는 재정제(Re-refining)입니다.
독일과 이탈리아, 미국 등에서는 폐윤활유를 정제해 고품질 재생 윤활기유로 활용하는 산업이 이미 형성되어 있으며, 국가별 제도에 따라 재생제품의 시장 확대를 위한 정책도 함께 운영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도 윤활유는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를 통해 회수·재활용 체계를 갖추고 있으며, 회수된 폐윤활유는 다양한 방식으로 재활용되고 있습니다. 다만 현재는 정제연료유 등으로 활용되는 비중이 높아, 폐윤활유를 다시 고품질 윤활기유(Base Oil)로 환원하는 고부가가치 재활용을 확대하는 것이 향후 과제로 꼽힙니다.
폐윤활유는 어떻게 다시 ‘기유’가 될까?
한 번 사용한 윤활유에는 산화 생성물과 금속 마모분, 수분, 연료 성분, 기존 첨가제의 잔여물 등 다양한 불순물이 섞여 있습니다. 따라서 이를 다시 윤활기유로 사용하려면 단순히 이물질을 걸러내는 것 이상의 정교한 공정이 필요합니다.
대표적인 방법이 감압증류(Vacuum Distillation)와 수소화 정제(Hydrotreating) 등을 결합하는 고도 재정제 공정입니다.
먼저 전처리를 통해 수분과 고형물 등을 제거하고, 감압 상태에서 증류해 활용 가능한 기유 성분을 분리합니다. 이후 필요에 따라 용제 추출이나 수소화 정제 등의 공정을 적용해 산화 생성물과 불안정한 성분, 황 등 품질에 영향을 미치는 물질을 추가로 제거합니다.
이러한 고도 정제와 품질 관리 과정을 거치면 폐윤활유에 남아 있던 기유 성분을 다시 윤활유 생산에 활용할 수 있는 재생 윤활기유(Re-refined Base Oil)로 회수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폐유를 ‘재사용’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폐윤활유를 정제연료유로 만들어 연소시키면 에너지를 한 번 더 활용할 수 있지만, 연소된 탄화수소 자원은 다시 윤활유 원료로 돌아올 수 없습니다.
폐윤활유의 탄소 저감 효과, 왜 주목받을까?

폐윤활유를 재정제하는 중요한 이유는 새로운 윤활기유를 생산하는 데 필요한 원료와 에너지 투입을 줄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재(Virgin) 기유는 원유 채굴과 수송, 정제공장의 상압·감압 증류와 후속 정제 공정 등을 거쳐 생산됩니다. 반면 폐윤활유 재정제는 이미 한 차례 생산된 기유 성분을 회수해 다시 활용한다는 점에서 원료 투입과 일부 생산 공정을 줄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NORA(National Oil Recyclers Association) 및 관련 LCA 자료에 따르면 재생 윤활기유(Re-refined Base Oil)의 생산 과정에서는 신재 기유 생산과 비교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약 50~80% 줄일 수 있는 것으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실제 감축 수준은 비교 대상이 되는 신재 기유의 생산 방식과 재정제 기술, 폐유 수집 거리, 에너지원 등 LCA의 시스템 경계와 조건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
결국 폐윤활유의 재정제는 단순한 폐기물 처리를 넘어, 새로운 원료 사용을 줄이면서 기존 탄화수소 자원의 활용 기간을 늘릴 수 있다는 점에서 자원 안보와 탄소중립을 함께 고려할 수 있는 순환경제 모델입니다.
반면 재정제를 통해 윤활기유로 되돌리면 ‘윤활유 → 폐윤활유 → 재생기유 → 윤활유’로 이어지는 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습니다. 폐기물을 다시 본래와 유사한 고부가가치 원료로 되돌린다는 점에서 순환경제가 지향하는 자원 활용 방식에 한층 가까운 접근입니다.
국내에서 발생하는 폐유, 얼마나 다시 자원으로 활용되고 있을까?

국내에서는 사업장 지정폐기물 가운데 폐유와 폐유기용제가 연간 약 140만 톤 내외로 발생하며, 전체 지정폐기물의 약 25%를 차지하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습니다. 여기에 가정과 음식점 등에서 발생하는 동식물성 폐유 약 50만 톤을 포함하면 국내에서 발생하는 폐유 관련 자원의 규모는 연간 200만 톤 안팎으로 추산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상당한 양의 폐유가 발생하고 있지만 중요한 것은 단순한 ‘재활용 여부’가 아닙니다. ‘회수한 폐유를 어떤 가치의 자원으로 다시 되돌리는가’가 순환경제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국내 폐윤활유 역시 다양한 방식으로 재활용되고 있지만 정제연료유 등 연료 용도의 활용 비중이 높습니다. 비교적 처리 비용이 낮고 기존 수요처를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자원을 다시 윤활유 원료로 순환시키는 측면에서는 한계가 있습니다.
따라서 앞으로의 과제는 기존 재활용 체계를 넘어 고도 정제 공정을 통해 폐윤활유를 고품질 윤활기유로 환원하는 비중을 확대하는 것입니다. 기술적으로는 감압증류와 수소화 정제 등을 결합해 폐유에 포함된 첨가제 잔여물과 산화 생성물 등을 제거하고, 일정한 품질 기준을 만족하는 윤활기유를 생산하는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술이 확보된다고 해서 곧바로 시장이 형성되는 것은 아닙니다. 폐유에서 제품으로 넘어가는 과정에는 기술 못지않게 제도와 시장이라는 또 다른 장벽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기술은 있는데 왜 어려울까? 폐유 업사이클링을 가로막는 장벽
폐기물에서 제품으로, ‘End-of-Waste’가 필요한 이유

친환경만으로는 부족하다, 결국 시장을 움직이는 것은 ‘성능’

재생기유 시장이 안정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친환경 제품’이라는 가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실제 산업 현장에서 요구하는 성능과 품질을 객관적으로 입증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특히 자동차용 윤활유처럼 높은 신뢰성이 요구되는 분야에서는 완제품 제조사와 자동차 제작사가 요구하는 규격과 승인 절차가 시장 진입의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재생기유를 사용한 윤활유 역시 이러한 성능 기준을 충족한다는 사실을 객관적으로 입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초기 시장을 형성하는 과정에서는 공공부문의 역할도 고려할 수 있습니다. 일정한 성능과 품질이 검증된 제품을 대상으로 공공버스나 관용차량, 공공시설의 산업설비 등에서 우선적으로 활용하고 실제 운용 데이터를 축적한다면 재생기유에 대한 시장 신뢰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폐유 재생유’라는 표현보다는 ‘순환기유(Circular Base Oil)’ 또는 ‘자원순환 기반 윤활기유’처럼 폐기물의 출처보다 제품의 가치와 성능을 강조하는 접근도 필요합니다.
여기에 새로운 기술과 제품이 기존 규제 체계에서 곧바로 상용화되기 어려운 경우에는 규제샌드박스를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습니다. 일정한 기술 수준을 갖춘 기업이 제한된 용도에서 재생기유를 적용하고 성능과 환경성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함으로써 향후 제도 개선에 필요한 데이터를 확보하는 방식입니다.
폐윤활유 순환경제의 성패, ‘수집 네트워크’와 ‘고순도 정제 기술’에 달렸다
폐윤활유 재활용 산업이 실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수집 네트워크의 경제성’과 ‘고순도 정제 기술력’이라는 두 가지 조건을 동시에 확보해야 합니다.
폐윤활유는 자동차 정비소와 공장, 각종 산업설비 등 수많은 배출처에서 분산되어 발생합니다. 따라서 이를 경제적으로 회수하기 위해서는 지역별 거점 수거 체계를 마련하고, 폐엔진오일과 폐유압유 등 폐유의 종류와 성상에 따라 분리·선별해 수거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기에 디지털 기술을 접목할 수도 있습니다. 저장탱크에 IoT 기반 적재량 센서를 설치하고 수거 차량의 동선을 실시간으로 최적화(Route Optimization)한다면 분산된 폐유의 수집 비용과 운송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을 함께 줄이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정제 기술 역시 고도화되어야 합니다. 단순한 정제연료유 생산에서 벗어나 폐윤활유를 다시 고부가가치 기유로 되돌리려면 전처리·감압증류·수소화 정제 등으로 이어지는 단계적인 재정제 공정(Re-refining Complex)을 구축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국내처럼 배출원이 분산되고 폐유의 종류와 성상이 다양한 환경에서는 하나의 대규모 공정만을 적용하기보다 원료 특성에 따라 필요한 정제 공정을 조합할 수 있는 모듈형 플랜트(Modular Plant)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현재 보편적인 저비용 정제 방식은 초기 투자와 처리 비용 측면에서는 유리하지만 최종 제품의 부가가치가 제한될 수 있습니다. 반면 고도 재정제 기술은 초기 설비 투자가 크지만, 폐유를 다시 고품질 윤활기유로 순환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시장 가치와 환경적 활용 가능성을 함께 높일 수 있습니다.
폐유를 ‘처리하는 산업’에서 자원을 ‘다시 만드는 산업’으로
폐윤활유의 재활용은 이제 단순히 “발생한 폐기물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의 문제를 넘어 “이미 사용한 자원을 어떻게 다시 산업의 원료로 되돌릴 것인가”의 문제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폐유를 안정적으로 회수할 수 있는 수집 네트워크와 고순도 재정제 기술, 재생기유의 품질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성능 기준, 그리고 일정한 기준을 충족한 재생 원료가 시장에서 다시 제품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함께 마련되어야 합니다.
특히 폐유를 단순 연료로 활용하는 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윤활유 → 폐윤활유 → 재생기유 → 새로운 윤활유’로 이어지는 자원순환 구조를 구축한다면 기존에 생산된 탄화수소 자원의 수명을 더욱 길게 연장할 수 있습니다.
결국 폐윤활유 순환경제의 경쟁력은 얼마나 많은 폐유를 처리했느냐보다 회수한 폐유를 얼마나 높은 가치의 자원으로 되돌릴 수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폐기물 처리 산업의 관점에서 벗어나 버려진 자원으로 다시 고부가가치 원료를 생산하는 산업으로의 전환. 폐유의 마지막을 새로운 윤활기유의 시작으로 연결하는 기술과 제도야말로 순환경제와 탄소중립 시대를 준비하는 폐윤활유 업사이클링의 핵심 과제라 할 수 있습니다.



